top of page
Writer's pictureShinuh Lee

[연재] 질병과 전쟁 그리고 예술

Updated: Dec 18, 2020

이신우교수의 음악이야기 <3> '죽음의 한가운데 존재하는 너저분한 삶'

연일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한 국가, 한 지역에서 벌어진 비극이었는데 이제는 최초 발병지를 넘어 우리나라로, 아시아로, 미국, 유럽 아니 전 세계로 퍼진 전염병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거의 모든 음악회가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음악가들은 이제 이 공연들이 연기되어 다시 열릴 수 있을지, 모두 취소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동시에 생계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 봉착했다. 이미 미국과 유럽의 주요 공연장의 음악회들도 모두 취소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야말로 현 시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아직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특별한 거대 전염병의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는 그의 교향곡 1번 '거인 Der Titan 1884-1888' 3악장에서 어린 아이의 죽음을 암시하는 동요이자 장송행진곡을 집어넣었다. 노먼 레브레히트(Norman Lebrecht)는 그의 저서 '왜 말러인가 Why Mahler'에서 당시 "5세 이하 유아의 56%에 달하는 숫자가 천연두 등의 역병에 걸려 사망"했는데 말러가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에 대해 음악으로 저항했다"고 썼다. 또한 "당시 아이들의 죽음은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그 비극을 경험하지 않은 가정이 없을 정도"이며 "죽은 아이에 대한 애도와 슬픔도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고 시신을 묻은 뒤 묘비도 제대로 세워주지 않았다"라고 적었다. "아이의 시신을 담은 관이 선술집에 모인 흥겹고 왁자한 인파를 뚫고 집 밖으로 나가는, 어린 시절 여러 차례 목격해 각인된 이미지…"


레브레히트는 또한 존 F. 케네디 암살 직후 열린 공연에서 번스타인은 말러 교향곡 2번으로 그를 추도했고, 로버트 F. 케네디의 장례식에서는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가 연주되었으며, 9.11 테러 직후 미국의 교향악단들은 예정된 프로그램을 대신하여 말러의 곡을 연주하였고 미국이 전 국가적인 슬픔에 잠겼을 때마다 그의 교향곡 2번과 5번, 9번으로 슬픔을 표현하며 깊은 위로를 대신했다고 강조하며 슬픔과 비애 속 유독 말러의 음악이 연주되는 이유에 대해 분석했다.


1, 2차 세계대전의 비극 또한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슬픔과 분노, 탄식으로 나타났다.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nberg 1874-1951)는 나치의 횡포 속에 죽어간 유대인들에게 바치는 애도의 작품 '바르샤바의 생존자 A Survivor from Warsaw 1947'에서 새벽부터 구타를 당하며 유대인 가스실로 내몰리는 상황 속 나치의 폭력에 맞선 유대인 포로들의 절박하고도 숭고한 저항의식을 담았다. 고조되는 긴장 속 최절정의 순간에 유대인들의 신앙고백인 고대히브리 노래 '쉐마 이스라엘'을 인용한 이 작품은 잔혹한 폭력에 맞선 인간의 존엄함과 생명의 엄중함과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화가 모란디(Giorgio Morandi 1890-1964)는 풍경화를 통해 쓸쓸한 마을 풍경 속 전쟁의 황폐함과 고독을 담담히 그려냈다. 모란디 특유의 잔잔하고 담백한 화풍이 그대로 보이는 작품이지만 울림은 그 어떤 극적인 작품보다 깊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그의 작품 '게르니카 Guernica 1937'에서 스페인 내전이 한창 벌어지던 1937년 4월 26일, 나치가 게르니카를 폭격하여 1500여 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데 대한 분노와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하였다. 폭격이 보도된 후 바로 '게르니카' 작업에 들어가 5월 1일에 첫 스케치를 내놓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게르니카 폭격이 얼마나 화가 피카소에게 큰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었는지 알 수 있다.


다시 말러로 돌아가 보자. 레브레히트는 "죽음의 한가운데 존재하는 너저분한 삶" 그것이 바로 말러가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였다고 적었다. "동생들의 관을 뒤따르고 있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지만 그러면서도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하나하나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소년 말러..." 말러의 음악은 아름다움과 고상함을 넘어 클래식음악을 잘 모르는 청중에게도 어떤 메시지를 던진다. 말러나 쇤베르크, 모란디나 피카소 모두 이 지점에서 어떤 공통점들이 있는데 이 예술가들이 모두 고통이나 비극으로 기록된 인류 역사 속 우리의 삶에 대해 미화하지 않고 너저분한 진실과 황폐함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노출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너저분함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치유를 받고 인간의 존엄함과 생명의 숭고함에 대해 다시 통찰하게 된다. 질병과 전쟁의 역사 속에서도 늘 예술이 존재해왔던 또 하나의 이유.


출처: 한국기독공보 http://www.pckworld.com



160 views0 comments

Comments


bottom of page